요즘에 와서야 화장실이란 말이 보편화 되었지만 예전에는 뒷간
측간 통시간 변소 그 누구는 "나홀로 다방".이란 은어를 사용하기
도 했고 지방마다 조금씩 부르는 이름이 달랐다 아뭏튼 그곳은
아이야 어른의 손을 빌리기도 했지만 자라서는 오직 홀로 은밀히
일을 보아야 사람축에 드는 곳이다
가끔 가다가 너무 급한 나머지 전봇대 아래 라든가 산길 옆 으슥
한 곳에서 볼일을 보는 사람도 있더만 그렇게 은밀히 행 해지는
일에 지나가는 사람의 눈에 띄이기라도 한다면 그 또한 엉거주춤
일어서지도 못하고 심히 난처한 지경이 될수도 있음이다 물론
얼굴에 5mm 철판을 깐 사람은 예외로 두고 말이다
먹어야 사는건지 살려고 먹는건지 모르지만 아뭏튼 사람도 적당히
먹어서 영양을 섭취해야 살아가는 것인데 먹기만 하고 내놓을 것이
없다면 문제가 되지 않으련만 먹는것 치고 내놓지 않는 생물은 아무
것도 없으니 그 뒷처리가 문제이다 그나마 사람은 특별한 장소를
만들어 모아 놓기라도 하니 다행이다 싶다
비료가 귀하던 옛날엔 그 배설물까지 중요한 거름이 된다고 앉았던
자리에 풀도 안 난다던 어느 영감님은 모든 식구들에게 용변은 꾹
참고 꼭 집에와서 보라고 엄명을 내려놓았겠다 거름을 듬뿍 받아
내년 보리농사도 풍년으로 만들어 보겠다는 심사였는데 헌데 그게
어디 마음대로 때와 장소를 가리게 되는감
아래로 치미는 데야 당할수 없는 것이고 급히 남의집 변소를 찾은것
까지는 좋았는데 옹쳐맨 허리띠가 풀리지 않아 실례를 했던 슬픈
피플들도 그 시절엔 어렵지 않게 만날수 있었다 그게 자신도 모르게
옹쳐 매지고 허리에 힘 들어가다보면 이빨로 물고 잡아 당겨도 잘
풀리지 않느니 여름날 돼지고기라도 한점 먹는날엔 난리나는 거고
사람중에는 쉽게 뒷일을 보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변비에 걸렸
는지 무슨일인지 유난히 변소에서 오래 앉아있는 사람이 있더라
물론 일 끝난 다음엔 오금이 굳고 결려서 쉽게 일어나지도 못했
고 요즘같이 양변기라면 그런 고통은 없었을지 모르지만 옛날엔
너도나도 그저 퍼세식(쪼그려 앉기식) 구조였더라
옛날 서울로의 상경 러시가 이루어지던 시절 서울 변두리에는 여
기저기 판자집들이 들어섰는데 일본말로 하꼬방이라고도 불렀더
라 산쪽으로 그저 땅을 조금파고 지은 무허가 집이다 보니 전기
수도 모든것이 부족했고 특히 화장실 하나를 대여섯 세대가 사용
하게 되었는데 이름하여 공동 변소였더라
매일 아침이면 그 화장실 쟁탈전이 벌어져 남여 함께 길게 줄을
서야했는데 그 화장실은 남여노소도 없고 먼져오는 놈에게 우선
권이 주어지는 곳이니 아가씨도 아줌마도 아이도 노인도 그저
휴지 하나 들고 줄을 서야했던 곳이다 그런데 유난히 들어갔다
하면 오랜시간을 괄약근과 씨름 하는 사람이 있었으니.....
밖에있는 아이는 똥 싼다고 발 동동 구르지 소피 보려던 아가씨
도 다리를 비비꼬는 형국이 되었으니 밖에 줄선 사람들의 원성이
드높았더라 급기야 마누라 까지 나서서 "인간아! 빨리 나와야지
밖에 줄선 사람들은 생각지도 않느냐는 둥 욕을 바가지로 먹는
경우도 허다했다는 시절이었다 그 사람은 뒷머리 한번 긁었고....
허나 그게 아무리 급해도 쉽게 뚝 끊어지는 것도 아니고 어찌 그
사람만 나무랄수 있겠는가 그런 소동은 사람들의 빗발치는 민원
에 동사무소에서 이동식 몇개 들여 놓아 줄때까지 계속 되었고....
한시절 에피소드지만 아뭏튼 사는게 뭔지 그때 그 사람들은 어느
해 인근 신도시로 집단 이주를 시키며 그런 소동도 끝이났었다
(지금 집에 화장실 한두개 있는 사람들은 복 받은거다)
**** 생각하면 쓴웃음 나오는 이야기 노리쇠 씀 ****